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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REVIEW/Book

에른스트 곰브리치, <서양미술사>(pocket edition), 파이돈(2006)/예경(2013)

*참고로 이 카테고리에는 책의 내용보다는 만듦새에 관한 리뷰를 올릴 계획이다.


에른스트 곰브리치, <서양미술사>(pocket edition), 파이돈(2006)/예경(2013)


에른스트 곰브리치 경이 1950년에 쓴 <서양미술사>의 문고판 둘이다. 하나는 영국의 파이돈 출판사에서,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예술서적을 주로 내고 있는 예경에서 나왔다.

파이돈 판은 이미 디자이너 Sonya Dyakova 를 포스팅하면서 소개한 바 있다. 파이돈 판은 2012년 경에 구매한 것 같다. 처음에 이 책을 봤을 때 받은 인상은 '우아함'이었다. 종이 선택부터 가름끈 등 아기자기한 맛이 있으면서 전체적으로는 잘 정돈되어 있었고 문고판임에도 고전의 품격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경 판을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했을 땐 무척 반가웠다.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을 그대로 살려서 개정판을 냈다는 건 그만큼 이 디자인이 매력이 있다는 말이니까. 그렇게 곧 사야지 하다가 2년이 지났고, 최근에서야 손에 넣게 됐다. 그런데 펼쳐보니 내 기대와는 다른 몇 가지가 있어 리뷰 카테고리도 개시할 겸 두 버전을 비교해 본다.(사진이 엉망)

이게 싸바리로 싼 모습, 아래는 싸바리를 벗긴 표지

원본(?)을 충실히 따랐다. 내지도 마찬가지다. 사전 종이(25~40gsm 정도의 박엽지)와 비슷하거나 아주 조금 두꺼운 종이를 쓴 게 파이돈 판 디자인의 특징이었는데, 그것 또한 반영했다. 책의 구조(추천사가 들어가는 부분, 판권면이 앞인지 뒤인지, 가름끈 등)을 거의 같게 했고, 내지 디자인의 이미지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장표지 디자인도 거의 비슷하게 했다. 일일이 말할 필요 없이 최대한 (할 수 있는 한) 같게 하려고 애썼다. 색은 조금(많이) 차이가 있는데, 파이돈 판이 좀 더 노란기를 많이 담고 있다.

하지만 디자인을 할 때 영어와 한글의 차이는 크기 때문에, 장표지 디자인에서 서체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타이포에 대해 지식이 많지 않아 구체적으로 쓸 수 없는 게 아쉽다. 많은 외서들이 -특히 디자인, 예술 분야- 판권면에 사용한 서체를 명기하고 있는데, 파이돈 판의 본문에는 에릭 길을 썼고 장표지의 장(크게 들어간 아라비아 숫자)은 TYP1451을 썼다) 그렇게 나온 게 이런 디자인인데...

엉성해보인다. 아예 원본 디자인을 살릴 거였으면 장표지의 이미지도 옮겨올 수 없었을까? 장을 나타내는 숫자는 서체를 그대로 살리고 한글 부분을 그 이미지에 맞춘다든지 하는 방식으로...숫자간 자간도 뭔가 벙벙하고.(아,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었는데...) 어쩌면 이 책 하나 때문에 서체를 사는 게 아까워서-라는 단순한 이유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얇은 종이를 내지로 쓴만큼 뒷면 글씨가 비칠 위험이 있는데, 이건 내 눈이 식별을 잘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예경 판이 더 많이 비치는 느낌이다. 파이돈 판 읽을 때는 비쳐서 불편하다라는 생각을 안 했는데, 예경 판은 뭔가 거슬리는 게 있는 듯. 알파벳과는 다르게 한글은 한 글자 한 글자가 사각형에 거의 가득 차기 때문에 서로 간섭하는 부분이 더 많아져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이미 내가 편견에 사로잡혀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그리고 사진을 제대로 못 찍어서 잘 안 보이지만 실제로는 파이돈 판이 미색이 더 많이 돈다.

도판부분은 두 버전이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텍스트부분과 도판이 완전이 분리되어 있다. 이것도 이 책의 특징인데(그래서 가름끈이 두 개 들어감), 파이돈 판은 종이는 달리 하면서 색을 맞춘 반면, 예경 판은 종이도 색도 다르게 했다. 스노우지 같이 광택이 적으면서 새하얀 종이에 도판 부분을 인쇄했다. 그러면서 책의 배부분을 봤을 때 확연한 차이가 생긴다. 이렇게.

난 이렇게 차이가 생기는 점에선 파이돈 판에서 색을 맞춘 방식이 좋지만,

도판을 보면(로제티의 수태 고지) 파이돈 판은 미색에 인쇄해서 편안하고(톤이 약간 다운되어서) , 예경 판은 생생하게 잘 나온 점이 도판 인쇄로선 장점이기 때문에 둘다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아무래도 책 전체의 만듦새를 본다면 색을 맞춘 파이돈 판이 좋다.


이렇게 장황하게(하지만 별 내용은 없게) 썼지만 이 포스팅을 하게 된 계기는 따로 있다. 이렇게 대놓고 똑같이 했으면서도 원본, 즉 파이돈 판의 디자이너 이름이 어디에도 없다. 판권면을 찍긴 했으나 포스팅이 쓸데없이 비대해질 것 같아서 이 글에 첨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암튼, 예경 판의 판권면에는 디자이너 이름이 한국 디자이너 이름밖에 없다. 책을 구석구석 찾아봤지만 Sonya Dyakova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고, 혹시나 해서 홈페이지도 봤지만 역시 없었다. 왜일까. 표지 디자인은 외국 표지의 모티브를 따오는 정도는 그냥 '한국어판 디자인'이라고 부러 기재해서 어느 정도 외서와의 연결성을 내비치는 것 같긴 한데, 이 경우는 표지뿐만 아니라 모든 만듦새를 같게 했기 때문에 이전 디자이너의 이름을 쓰지 않는다는 건 내 상식(?)으론 이해가 되지 않는다. 판권을 가져올 때 디자인도 다 같이 가져와서 굳이 명기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거나, 그런 건가? 궁금해져서 다른 책을 봤다. 내가 알기로 원래 원서 디자인도 한국어판과 같았다고 기억하는 데이비드 마추켈리의 <아스테리오스 폴립>이다. 펼쳐보니 역시 앞날개에 적혀있었다. 별 감정이 없이 이 책을 봤다고 해도 좀 당황했을 것 같은데 좋아하는 디자이너와 관련된 일이라 더 황당하다.


Sonya Dyakova가 디자인 한 100명의 현대미술작가에 관한 도록인 <Creamier>도 조만간 리뷰할 예정. (앞으로 이 카테고리를 통해 아트북과 아틀라스책 위주의 리뷰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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