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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REVIEW/etc.

영낙없다/영락하다

일기에 '영락없이 연말이다'라고 적고 보니 갑자기 '영락없다'라는 말의 뜻이 궁금해서 사전을 펼쳤다.

교학사에서 2004년에 발간한 한국어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일단 '영락'을 보면,


영락(榮꽃 영, 樂즐거울 락): '영락하다'(영화롭고 즐겁다)의 어기.

덧붙여, '영락-없다'는 틀린 말이며 영낙없다로 고쳐 써야 한다고 나와 있다.

그렇게 '영낙없다'는 한자어가 아닌 우리말로 '조금도 틀림이 없다라고 풀이되어 있다.


다소 놀랐던 터라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나온 한국어 학습사전(2015년 개정판)을 펼쳤다. 그런데 여기에는


영락없다(零조용히오는비 령, 落떨어질 락): 조금도 틀리지 않고 꼭 들어맞는다.라고 나와 있는 게 아닌가.

더 헷갈리게 돼서 네이버에 검색해봤더니 바로 위 결과와 같이 나왔다.

그러던 중 검색에 걸린 2004년 한겨레 신문에 실렸던 관련 글을 보고 문제가 조금은 해결이 되었다.


영낙없다/영락 (2004-05-30 , 한겨레)


  1920년 〈조선어사전〉(조선총독부)에 ‘零落업다’가 실렸다. 그 뒤, 38년의 문세영 〈조선어사전〉에는 ‘영락없다’를 우리말처럼 싣고, 풀이 끝에 ‘零落’을 참고하라는 것처럼 표했다. 47년의 이윤재 〈표준조선말사전〉에는 ‘영락없다’를 한자 없이 우리말로 다루었다. 그러나 우리말 맞춤에는 ‘영락’ 같은 꼴은 없다. 한자말에는 있는 꼴이다. 그래서 57년의 한글학회 〈큰사전〉에 ‘영락없다’(零落-)라고 정리했다. 한자말로 다룬 것이다. 이것을 그 뒤 사전들이 따르고 있다.

  그런 중에 92년의 한글학회 〈우리말큰사전〉과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서 ‘영낙없다’ 꼴을 한자와 관계없이 우리말로 바루었다. 그랬는데, 99년의 〈표준국어대사전〉(국어연구원)에 ‘영락없다’(零落-)를 되살리고, ‘영낙없다’는 북한말로 돌려 버렸다. 제 버릇 개 못 주는 모양이다.

  ‘영낙없다’는 모양새를 나타내는 말로서 “조금도 다르지 않고 똑 같다, 틀림없다”는 뜻이고, ‘零落’은 ‘낙탁’과 같이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로서 “①초목 잎이 시들어 떨어짐 ②세력이나 살림이 보잘 것 없이 됨 ③신세가 하염없이 됨 ④죽음” 따위 뜻의 말이다. ‘영낙’은 홀로 쓰이지 않고 ‘가뭇없다, 느닷없다, 뜬금없다, 부질없다, 자발없다, 채신/치신없다, 하릴없다, 하염없다’ 들처럼 낱말의 뿌리로만 쓰인다.

  ‘영낙없다·영락하다’는 있어도, ‘영낙하다·영락없다’는 없다. ‘영낙없다’에 ‘零落’을 뒤집어씌운 것은, 마치 ‘어굴하다’에 ‘抑鬱’을 뒤집어씌운 것과 같다. 하기야 ‘채신/치신없다’도 그대로 두지 않고 ‘處身’을 뒤집어씌우는 판이니까 탓하여 무엇하리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자를 봐도 영낙없다의 용례를 미루어보아 零落이 쓰이는 게 자연스럽진 않다. 많은 사전에서 영락없다를 맞는 말로 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영낙없다라는 말이 맞는 말이라고 여기고 그렇게 쓸 생각이다.